티스토리 뷰

카테고리 없음

끝까지 이럴래?

lakn 2024. 1. 29. 22:34


빙하기를 관통하는 열 세가지 방법[i] 1995년 해방 50주년 기념을 위한 장편소설 공모에서 권현숙의 『인샬라』가 당선된 것을 계기로 이듬해인 1996년 한겨레문학상이 공식 제정되었다. 제정 첫해엔 수상작이 없었고, 5회 역시 수상작이 없었던 것을 제외하고 2회부터 차례대로 수상자들을 열거하면 김연, 한창훈, 김곰치, 박정애, 심윤경, 박민규, 권리, 조두진, 조영아, 서진, 윤고은, 주원규, 최진영이다. 이 작품집에 단편소설을 수록한 작가들은 이렇게 열 세명이고(이 작품집은 2010년에 출간되었다.), 2011년 16회에는 장강명이 17회인 올해엔 강태식이 수상하였다. 『끝까지 이럴래 』는 한겨레문학상 수상작가 작품집으로서 60년대생 작가부터 80년대생 작가까지 포진하고 있다. 출생연도는 다르지만, 동일한 연대에 활동하고 있는 작가들의 다양한 스펙트럼을 통해 인간과 사회를 볼 수 있을 것이다. ‘인간과 사회에 대한 모색이자 실험’, 이 작품집은 한 마디로 이렇게 압축할 수 있겠다. 대부분의 OO상 수상 작품집이 그렇듯 이 작품집 역시 여성작가들의 활약이 두드러진다(특히 80년대생 작가들). 그리고 또 하나의 특징을 들자면 소재의 다양성이 있겠다. 사회의 다른 곳에서 여초 현상이 두드러진 것처럼 소설가 집단에서 여성 작가들의 활약이 돋보인다. 그러나 이것을 단순히 긍정적으로 평가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아들, 딸 구별 않고 하나만 낳은 부모 세대에서 자녀들이 어느 직업군에서건 50:50의 비율을 유지하는 건 어찌보면 당연한 거니깐. 소재의 다양성이라는 것도 새로운 게 없다. 이젠 ‘새로운 것’에 대한 강박조차 식상한 것이 되어버렸으니깐. 궁극의 상상력을 발휘하든, 일상을 현미경처럼 쪼개보든, 그 자체로 어떤 ‘신선함’이나 ‘독특함’이 되지는 못한다. (예를 들어 주원규의 위악은 이미 김사과에서 보았던 것인데 위악의 측면에선 김사과가 훨씬 우위다. 최진영의 경우도 윤이형이나 기존의 7, 80년대생 여성 작가들의 기시감을 느끼게 한다. 윤고은은 2011년 이효석 문학상까지 수상하며 발군하고 있는데, 그럴만한 작가며 작품인지 나는 잘 모르겠다. (따지고 보면 심지어) 서진이나 주원규는 80년대생도 아니고 70년대생이다. 그러나 언더그라운드 혹은 마이너리티적 정체성을 공유하는 두 작가 중 한 명을 선택하라면 나는 서진의 컬트적 상상력(p.378)의 손을 들어주겠다. 평론가 이명원은 이 책의 말미에 수록된 해설에서 반인간주의와 반미학적인 태도 역시 서사적 진정성 추구의 일환(p. 376)이라고 옹호하면서 이를 ‘포스트 진정성’[ii]이라고 명명하고 있는데 포스트모던에 대한 피곤증이랄까? 이젠 ‘포스트’라는 말만 들어도 지친다. 이 역시 이젠 식상하다 못해 질렸다고 해야 할 것 같다. 그렇다면 대안은 뭘까? 다시 원전으로 회귀해야 하는 걸까? 이명원의 표현대로라면 인문주의적 진정성의 세계를 지나 포스트 진정성의 세계로 전이한 거라면, 앞으로 우리가 추구해야 할 ‘진정성’ 앞에는 어떤 수식어를 붙일 수 있을까? 나는 잘 모르겠다. 암튼 ‘소설’ 넓게 보아 ‘문학’이 제 영역을 구축하기 위해 부단한 노력을 해왔으며 하고 있다는 사실만은 의심의 여지 없이 자명한 듯하다. 개인적으로는 심윤경, 박민규, 권리가 야구로 치자면 3, 4, 5번의 중심타선이라 볼 수 있을 듯하다. 세 타자 모두 타석에서 홈런을 날리면서 지지부진한 1, 2번 타선과 애매모호하고 긴가민가한 하위 타선을 살려주면서 팀을 승리로 이끄는 견인차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특히 심윤경의 「가을볕」은 단편소설의 미덕을 오롯이 보여주는 작품이고, 권리의 「그녀의 콧수염」은 엠마뉘엘 카레르의 『콧수염』만큼이나 경쾌하고도 공포스럽다. [i] 제목은 최진영의 「월드빌 401호」에서 가져왔다. 매머드가 고기를 먹었다면, 나도 종철이를 먹을 수 있다. 나 역시 빙하기를 관통하는 중이니까. (p.362) [ii] 무엇보다 젊은 작가일수록 인물들의 감정이 이완된 냉정함을 넘어 냉담함, 더 나아가서는 냉소에 가까운 양상으로 타자와의 거리 자체를 폐쇄하고 있는 경향을 보여주는 것은 징후적이다. 이러한 징후를 통해서 우리가 확인할 수 있는 것은 자아와 세계가 동시에 붕괴되고 있다는 세계감각의 공통성이다. (p.388)
한겨레문학상을 수상한 13명의 작가들의 작품집
깊이와 넓이, 리얼리즘과 모더니즘,
애착과 냉소의 이분법을 넘어선 生에 대한 13개의 시선

김연, 한창훈, 김곰치, 박정애, 심윤경, 박민규, 권리, 조두진, 조영아, 서진, 윤고은, 주원규, 최진영 등 한겨레문학상을 수상한 역대 수상자 13명의 소설을 모은 작품집이다. 처음 기획될 당시에는 집 과 성장 이라는 테마로 준비되었으나, 작가들은 가족 또는 자신들이 겪은 시간과 공간 이라는 테마로 확장하여 생의 이면과 각양 각색한 인간의 면면에 투사한 작품들을 선보인다.

각자의 작품세계에서 독창적인 작품을 선보여온 작가들답게 작품 속에 나타난 세계에 대한 인식 차이도 다양했다. 특히 가족서사의 측면에서는 정상가족에의 열망(심윤경,「가을볕」)과 해체된 가족을 인정하고 그 부재를 미니홈피의 일촌들과 블로그의 이웃들, 때로는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만나는 사람들로도 채울 수 있을 만큼(윤고은,「1/4」) 가족에 대한 인식 차이는 컸다. 그러나 공통된 점들도 발견된다. 미래에 대한 불안 (박민규,「끝까지 이럴래?」)로 대변되는 붕괴 라는 주제는 작품집을 구성하는 모든 작품들에 등장하고 있다.

문학평론가 이명원의 말처럼, 작품집 끝까지 이럴래? 는 각각의 서사적 음높이는 다르지만 그 음들이 엮어내는 풍부한 다성악(polyphony)을 들려준다. 깊이와 넓이, 리얼리즘과 모더니즘, 애착과 냉소의 이분법을 넘어선 생에 대한 13개의 시선이 이들이 들려주는 노래를 통해 전해진다.


김연- 핑크바인 드림
한창훈_ 그 아이
김곰치-졸업
박정애_ 피의자 신문조서
심윤경_ 가을볕
박민규_ 끝까지 이럴래?
권리- 그녀의 콧수염
조두진_ 여덟 살
조영아_ 고래의 죽음을 함부로 논하지 마라
서진_ 홈, 플러스
윤고은_ 1/4
주원규_ come back home
최진영_ 월드빌, 401호

〈해설〉 이명원 문학평론가_ 단독자들의 진정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