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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그림책그림책시렁 426《상추씨》 조혜란 사계절 2017.3.27. 우리는 씨앗을 먹습니다. 쌀밥이란 볍씨요, 빵이란 밀씨입니다. 능금 배 복숭아는 새롭게 흙에 깃들어 움트기를 바라는 씨앗을 품은 물덩이예요. 상추 시금치 배추 무 같은 남새는 모두 씨앗 한 톨에서 비롯하여 자라났습니다. 살점을 먹는 고기도 풀알이나 나무알처럼 씨앗이 만나서 태어나고 자란 끝에 우리한테 찾아옵니다. 《상추씨》는 상추씨를 솔솔 뿌린 밭자락에서 싹이 트고 잎이 나오고 꽃이 피면서 새롭게 씨앗을 맺는 흐름을 들려줍니다. 그냥그냥 즐기는 남새가 아닌, 즐겁게 해를 먹고 비를 마시고 바람을 들이키면서 자라는 숨결이라는 대목을 짚지요. 다만, 이 그림책을 보면 “따뜻한 햇빛”이라고 자꾸 나오는데요, ‘빛’은 따뜻하다고 하지 않아요. 햇빛은 맑거나 밝다고 해야 합니다. 상추가 자라도록 하는 해라면 ‘햇볕’으로 바로잡을 노릇입니다. 아무튼 바지런히 잎을 훑어서 누리는 상추인데, “아, 이제 그만 먹어 볼까?” 하고 생각하면서 “그동안 고마웠어.” 하고 속삭이면 어느새 꽃대를 올리고는 활짝활짝 노란꽃잔치를 베풀어요. 보드라우면서 싱그러운 기운은 씨톨에 고이 깃들면서 두고두고 이어갑니다. ㅅㄴㄹ.
똥벼락 「할머니 어디 가요?」 시리즈를 통해 오랫동안 많은 사랑을 받아온 조혜란 작가가 오랜만에 펴낸 그림책입니다. 이야기는 작은 씨앗에서 시작합니다. 작은 돌담 안, 아이가 고사리 손으로 가꿀 것 같은 작은 텃밭이 하나 있습니다. 그 밭에 빨간 장화를 신은 아이가 찾아와 상추씨를 후르르 뿌립니다. 상추씨를 뿌려 본 사람이라면 알겠지요, 상추씨가 얼마나 가볍게 흩날리는지 말이에요. 어느 새 씨앗은 싹을 틔우고 바람, 비, 햇빛 받고 자랍니다. 빨간 장화를 신은 아이는 상추에 물을 주고, 텃밭을 꽉 채우게 자란 상추를 솎아 주기도 합니다. 이제 완전히 자란 상추를 먹을 일만 남았지요. 맛있게 고기쌈도 싸 먹고 회쌈도 싸 먹습니다. 그림책은 일상에서 무심히 지나쳤던 상추를 천천히 섬세하게 들여다보게 보게 합니다. 다양한 상추의 표정, 초록의 여린 잎사귀들이 풋풋하고 생동감이 넘칩니다. 돌담을 두른 작은 텃밭도 빨간 장화도 그지없이 예쁩니다. 텃밭에서 상추를 키우는 일련의 일들은 시간에 따라 무심히 일어나는 일이지만, 작가가 바느질로 완성한 세계에서는 이런 평범한 일들도 다정하게 다가옵니다. 세계를 아름답게 다시금 보게 하는 힘, 그 힘이 자연스럽게 뿜어져 나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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